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책인데, 읽다가 머리가 아파지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관점이 어정쩡하게 새로워서 혼란스럽기도 했고, 성경주해서에 가깝기 때문에, 성경을 옆에두고 계속 대조하면서 봐야하는 수고로움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전에 '아'와 '어'의 미묘한 차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어려운 주제였던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 책을 한 번 정독했지만, 솔직히 어떻게 정리해야할 지 감이 안 온다. 한 번 쯤 더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내겐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은 뒤로 미뤄야 할 듯 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미흡한 정리나마 하는 게 좋을 듯 싶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렵게 읽은 책의 내용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테니까.
(일단 말해두지만, 이 밑의 내용들은 객관적인 자료 없이 나 개인의 경험과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다분히 오해의 소지와 오류가 많을 수 있다.)
톰 라이트는 '칭의'에 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칭의'란 어떤 것인가?
일반적으로 칭의, 즉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속한 장로교단에서는 이 '이신칭의'를 죄사함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생각하는데, '십자가 사건을 믿는 자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덧입혀진다'라고 보통 해석한다. 여기서 '의로움'이란 단어의 뜻이 애매하긴 한데, 보통은 '도덕적인 완전함'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연관된 다른 내용들이 많겠지만, '이신칭의'라고 할 때 떠오르는 내용은 위의 내용이 전부이고, 이것이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일반적인(일반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교단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칭의에 관한 생각에 톰 라이트는 더 큰 틀을 도입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단일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때부터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생각했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를 위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기존의 개념들이 대부분 뒤바뀌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미묘한 부분들과 말과 글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글로 설명하려면 적어도 A4 서너장은 써야 겠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다 적을 수도 없고, 짧게 설명하려다 보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냥 내가 책을 읽고 난 뒤에 느낀 톰 라이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두리뭉실하게 적어보겠다.
핵심은 '칭의'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위의 '칭의'에 관한 일반적인 시각은 다분히 개인적이며,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단일사건으로서 이미 완료되어 버린 이야기다. 하지만 톰 라이트가 새롭게 제시하는 '칭의'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구원 계획 안에 일부분이며, 그것(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 계획, 즉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창조세계의 회복이란 구원 계획의 목적은 '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한' '창조세계의 회복'에 있다는 말이며, 일차적으로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구원을 확정짓고, 승리를 선포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죄인이고 의로움(도덕적인 완전함, 율법을 온전히 이룬 자)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적인 언어로 얘기하면, 믿었고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믿었으면, 이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고, 믿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방식(율법=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이미 한 번 죄에 빠진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의 사역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또한 성령의 사역이 진행되어야지만, 현재의 죄된 본성이 미래의 의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신명기 30장의 약속처럼, 우리를 그렇게 변하게 하실 것이다.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정리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니까 한 번 더 정리해보면, 그냥 성령님과 동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다만 지금까지는 '칭의'에 관해서 '죄사함'과 연관시키기만 했지, '칭의'를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톰 라이트 역시 십자가의 죄사함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다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당연히 그 전 단계도 있었고 말이다.) 아마도 톰라이트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약신학, 교회론, 하나님 나라 등은 IVF 시절 내내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트가 새로운 관점을 얘기하는 것인지, 그냥 알고 있던 이야기를 또하는 것인지 매우 헷갈렸다. 다 읽어본 바로는 어느정도는 새롭고,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는 아팠지만, 나름 의미있는 고통이었던 것 같다. 두리뭉실하게 생각했던 '칭의'에 관한 내용들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고, 로마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수없이 고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역'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령의 사역이란 다분히 역설적이다.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도 자유롭게 일하고, 성령님도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 이 말은 내가 30, 성령님이 70을 일하시는 그런 협력주의 모델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도 100을 일하고, 성령님도 100을 일하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성령님이 하셨다'라고 할 것이고, 성령님은 마지막 때에 '니 상이 크다'라고 하실 것이다. 물론 완성에 다다르는 것은 끝이 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일이겠지만.
희망은 동행하시는 성령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실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변호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
★★★★
덧. 뭔소리하는 지 나도 모르겠다ㅜㅜ